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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님!


당신이 떠나신지 벌써 11년이 됐습니다. 지금도 당신이 떠나던 그 해 여름이 어제처럼 선연합니다. 


마지막 이별을 국회에서 하셨습니다. 늦은 밤, 국회의사당 분향소를 향해 끝도 없이 이어지던 애도의 물결. 그 때의 짙은 국화향이 아직도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대통령님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었으나 후회는 없다. 나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역사의 심판이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11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역사는 대통령님의 그 탁월했던 지도력을 기리고 있습니다. 당대보다 역사의 평가가 더 높은 지도자로 매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참으로 큰 어른이셨습니다. 당신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과 한반도의 역사였습니다. 수평적 정권교체로 헌정사의 물길을 돌려놓은 것도, 동토의 한반도에 평화의 봄을 불러온 것도 당신이었습니다. 외환위기라는 백척간두의 국가 위기를 조기에 이겨낸 것도, 조국에 노벨평화상의 영광을 안긴 것도 당신이었습니다. 이 모두 역사에 남을 큰 발자취였습니다. 


사형수와 대통령. 파란만장이라는 말 그대로의 삶을 살면서도 언제나 바위처럼 단단했던 당신의 신념을 기억합니다. 테러와 납치, 가택연금과 사형선고도 민주화에 대한 당신의 신념을 꺾지 못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의 생생한 증거였던 그 담대한 삶을 존경합니다. 


당신은 진정한 의회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는 원칙을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3선 개헌을 할 때는 “국회에서 저지하자” 외쳤고,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는 “국민은 국회에서 싸우라고 뽑아주셨다”며 민주당 지도부를 다독였습니다. 그때 그 말씀이 제 정치인생의 나침반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대통령님!
당신은 중산층과 서민의 참된 벗이었습니다. 밤이 깊어야 별이 빛나듯 위기가 깊어지면 대통령님의 탁견과 결단이 더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DJ 당신이 놓은 사회 안전의 주춧돌 위에 복지시스템이라는 기둥을 세우고 사회적 약자를 지키는 지붕을 마련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코로나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가고 있습니다. 세계가 그런 우리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의료진의 헌신, 국민의 역량, 정부의 선제적 대응이 조화를 이룬 덕분입니다. 그 바탕에는 대통령님이 놓으셨던 기초생활보장과 4대보험이라는 든든한 주춧돌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평화를 위한 일생을 살았습니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길고도 질겼던 분단의 철조망을 넘어 남과 북이 오가는 평화의 새 길을 열었습니다.  


역사를 바꾼 6.15 남북정상회담 20년. 그러나 지금 남북관계는 다시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대결의 시대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조차 엄습하고 있습니다.  


지난 제헌절, 저는 국회의장으로서 남북 국회회담을 제안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을 열고 남북관계와 민족문제를 진정성 있게 논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바로 지금이 남과 북 모두 평양 순안공항에서 남북 지도자가 힘차게 포옹했던 그 지혜와 결단을 다시 필요로 하는 순간입니다. 대통령님의 그 담대한 용단 그대로
남과 북의 닫힌 문을 다시 힘껏 열겠습니다. 서두르지도 멈추지도 않을 것입니다. 뚜벅뚜벅 갈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독재정권이 당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그 절망의 순간에도 대통령님은 민주·자유·평화가 들꽃처럼 피어나고,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이 주인인 세상에서 모두가 평화롭기를 기도했습니다. 


대통령님, 당신은 가셨지만 우리는 당신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 인권, 복지, 평화. 당신은 우리 가슴에 살아있습니다. 역사는 정의의 편이고, 국민과 역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당신의 믿음은 우리 모두의 믿음이기도 합니다. 


비범한 큰 정치인 DJ, 험난하고 고통스러웠지만 빛나던 그 길, 우리도 함께 가겠습니다.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2020년 8월 18일
추모위원장 국회의장 박병석 


양병원 기자, un888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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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8-19 01: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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