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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포커스뉴스>.

영화 '마션'(연출 리들리 스콧)은 화성에 낙오된 한 사람,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생존기와 NASA의 구출작전을 유머로 버무린 SF(Science Fiction·공상과학) 휴먼드라마다.

 

낙천적이고 수다쟁이인 식물학자 와트니는 미국 화성탐사 계획 3단계에 선발된 6인의 우주인 중 한명으로 임무를 수행하다가 사고를 당해 화성에 홀로 남겨진다. 지구에서 8000만㎞, 인류의 기술로 가는데 최소 211일이 걸리는 거리.  

▲ <사진제공=포커스뉴스>.

와트니는 30일간의 단기거주 공간으로 마련된 모듈 아레스3에서 생존을 위한 '삼시세끼'와 '무한도전'을 시작한다. 0.13%의 산소와 95%의 이산화탄소, 평균기온 –55℃, 물도 없는 불모의 황무지인 그곳에서 물을 만들고, 감자를 심고, 통신을 복구해 NASA와 겨우겨우 소통하면서 어느덧 제1호 화성인(The Martian·마션)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549화성일, 지구시간으로 임무 687일째 되는 날, 마침내 화성을 탈출한다.


▲ <사진제공=포커스뉴스>.

갑작스럽게 화성을 빠져나와 핵연료로 움직이는 행성간 우주선이자 우주정거장 '헤르메스'에 도킹해 지구에 거의 근접한 5인의 동료 우주인들은 와트니의 생존소식을 듣고 기쁨과 고민에 빠진다. 며칠 분의 식량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화성으로 돌아가 와트니를 구하고 돌아오는 422일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그러나 이들은 만장일치로 결의한 뒤 NASA의 귀환 명령을 어기고 항로를 화성으로 리셋한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의 결의를 수용한 NASA의 책임자는 안전검사까지 생략해가며 식량을 담은 보급선을 발사하지만 허망하게도 대기권에서 폭발하고 만다. 화성에 도착했을 때 살아있다는 보장도 없는 한 사람을 구하려다 5명의 우주인과 어마어마하게 비싼 '헤르메스'까지 잃게 된, 절망에 빠진 미국에 구원의 손을 내민 것은 뜻밖에도 중국이었다.


▲ <사진제공=포커스뉴스>.

영화 '마션'에서 중국의 우주정복 계획을 총괄하는 중국국가항천국(CNSA)의 주타오 부국장은 발사준비를 이미 마친 중국 최초의 태양 궤도 탐사선 '타이양셴(太陽神)'의 추진체를 미국에 제공하자고 꾸오밍 국장을 설득한다.

 

중국의 '대국적' 제안을 수용한 미국은 중국의 추진체에 미국산 보급선을 올려보낸다. 보급선은 '헤르메스'와의 도킹에 성공한다. 결국 중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 1개를 기부하고 '총 6명의 우주인'과 '헤르메스'를 구한 평화의 아이콘으로 우뚝 선다. '대국굴기(大國屈起)'하고 동시에 미국과 맞먹는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도 수립하는 어마어마한 외교적 성과를 취한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세계 속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영화에서와 달리 중국은 미국과 우주 개발에서 치열한 경쟁관계다. 우주개발은 군사적으로나 전략적으로나 특급 보안 사항이다.

 

중국은 지난 2013년 12월 14일 달표면에 무인 우주선 '창어3호(嫦娥三號)'를 안착시켰다. 당시 중국이 우주망원경을 설치해 지구에서 운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2년 가까이 지난 2015년 10월 14일에서야 공개했다.

 

신형대국으로 굴기하려는 중국의 야심은 현재 남중국해 문제를 두고 미국과 일촉즉발의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은 27일 중국이 영토라고 주장하는 남중국해 인공섬 12해리 안으로 9200t급 이지스 구축함을 진입시켜 무력시위를 펼쳤다. 이에 중국은 "경거망동 하지 말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 <사진제공=포커스뉴스>.

이런 국면에 박근혜 대통령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수상과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총리를 서울로 초대해서 10월 31일에는 한중 정상회담, 11월 1일 한일중 3자 정상회담, 2일 한일 정상회담을 펼친다.

 

이번 3자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미국의 아시아 '대리인'인 일본을 상대하는 우리 대통령은 이런 미-중 갈등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남중국해 관련해서 "국제규범 준수"와 "평화적 해결"을 동시에 주장하는 우리 정부는 나름대로 미국과 중국 어느 편도 들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 <사진제공=포커스뉴스>.

영화 '마션'의 중반에는 식량이 부족해진 화성의 와트니를 위해 최대한 시간을 아끼는 방법을 찾는 과정이 묘사된다. 이때 NASA의 국장과 홍보 수석을 화성과 지구라며 멀찌감치 세워 놓은 뒤 '스테플러'를 들고 구출방법을 설명하는 우주물리역학자 리치 퍼넬(도날드 글로버)이 등장한다.

 

리치 퍼넬이 제안하는 것은 지구에 근접한 '헤르메스'를 스윙-바이(swing-by·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궤도를 조정하는 방법, fly-by, sling-shot, gravity-assist)해서 화성에 되돌려 보내는 것. 스윙-바이는 실제로 우주의 탐사선들이 연료보다 더 많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 종종 행성의 중력을 사용해온 방법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이 겪고 있는 갈등에 우리 정부는 끼여 있다. 우리 정부가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 스윙-바이와 같은 기가 막히는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을까. 한국 외교의 수준에 이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 듯하다. 그러나 적어도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게 영화와 다른 우리 외교의 엄중한 과제다.

 

 

박진우 기자 tongtong@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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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10-30 15: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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